한국 천주교 소공동체와 리더십(본당 사목 구조)
-교회의 새로운 길과 새 지도력-
강윤철 신부 (마산교구)
목 차
들어가며
1. 교회론과 사회 구조에 대한 성찰 1.1 교회란 무엇인가 1.2 새로운 사회의 패러다임 1.2.1 새로운 사회의 구조 1.2.2 이루어야 할 사회 제도 1.3 요구되는 지도력
2. 교회의 새로운 길 2.1 소공동체들의 친교인 교회 2.2 참여하는 교회 2.2.1 그리스도와의 친교와 사명에 참여 2.2.2 공동 책임의 동료 일꾼 2.2.3 평신도의 본질과 사명 2.2.4 참여와 성장 2.3 버려야 할 교회의 모습
3. 새로운 양식의 지도력 3.1 안내하는 지도력 (Guiding Leadership) 3.1.1 안내자 |
|
3.1.2 지배적인 지도력과 안내하는 지도력 비교 3.1.3 촉진자(facilitator) 3.2 활기를 주는 지도력 3.2.1 예수님과 초대 교회의 지도 양식 3.2.2 활기를 주는 지도자의 태도 3.2.3 지도력의 전환 3.3 참여시키는 지도력 3.3.1 함께하는 지도자 3.3.2 참여와 공동 책임
4. 새로운 지도력의 시도들 4.1 기초 공동체의 추대로 사목 협의회 구성 4.2 가정 교리(소공동체 교리) 운영 4.2.1 가정 교리란 4.2.2 취지와 성과 4.2.3 교리 교사의 역할
나가며 |
한국 천주교 소공동체와 리더십(본당 사목 구조)
-교회의 새로운 길과 새 지도력-
들어가며
불우 시설 기관이나 농협, 또는 잡지사 등에서 판촉 내지 성금 모금을 위해 나에게 자주 전화가 온다. 며칠 전에는 인삼 공사 판매 촉진부에서 전화가 왔다. 신자라며 세례명까지 밝혔다. 한국 인삼과 중국 인삼의 차이점을 알려 주겠다며 미사 중에 기회를 달라고 하였다. 이런 종류의 전화가 왔을 때 나는 “사무실에 접수시켜 주세요. 해당 사목 위원이 처리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우리 본당에서 이런 사항은 사회 복지 위원회가 검토하고 연락하는 업무이다. 이 말을 들은 상대방들은 대체로 “결국 신부님이 결정할 것 아닙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당신 회사는 담당 계원이 검토하지 않고, 처음부터 사장이 모든 문제를 다 처리하고 결정합니까?”라고 대답한다. 그런 회사나 조직체는 없듯이 성당도 그렇다. 그렇게 하면 평신도 담당자는 허수아비가 되지 않겠느냐고 설명하면 “예, 알겠습니다” 하며 수긍한다.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평소 천주교에서는 신부가 모든 것을 다 결정하고 처리한다고 알고 있기에 신부에게 직접 전화를 하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주제는 ‘소공동체와 리더십’이다. 소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지도력을 발휘해야 하는가의 관점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5차 총회(1990년, 반둥)에서 제시한 ‘공동체들의 친교인 교회’에서 지도력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언급하겠다.1)
1. 교회론과 사회 구조에 대한 성찰
교회와 사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의 바탕 위에 교회 지도력에 대한 성찰이 가능하다. 교회는 사회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으며 사회 형태와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와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사회 구조와 인식의 틀을 살피어 복음화를 위해 거기에 맞는 지도력을 찾아야 하겠다.
1.1 교회란 무엇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헌장에서 제시한 교회론은 하느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성전이다.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 우리는 믿음과 세례로써 하느님의 백성이 된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을 이루도록 불린다”(교회 헌장 13항).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이 한 가족을 이루고 하느님의 한 백성을 이루도록 하려는 것이다”(선교 교령 1항). 하느님의 백성 전체가 ‘사제이고 예언자이며 왕’인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에 참여하며, 거기에서 나오는 사명과 봉사의 책임을 진다.2) 비록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에 뚜렷한 구별이 있다 할지라도 충실한 모든 신도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행위와 위엄에 비추어 그들 사이에는 진정한 동질성이 존재한다(교회 헌장 32항). 따라서 세례를 받은 신도들의 역할은 제각기 다르지만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사명과 봉사에 참여하여야 하는 권리와 의무가 있다.
∙그리스도 몸인 교회 :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은 그리스도의 몸이다. 공의회 문헌에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표현한다(교회 헌장 7항). 그리스도인들은 세례와 성만찬을 통하여 그들 자신이 그들의 공동체 안에서 예수의 몸이 되는 것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요한 6,56). 교회를 몸에 비유하는 것은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가를 잘 보여 준다. 교회는 단순히 그리스도 주위에 모인 것이 아니라, 그분의 몸 안에서, 그분 안에 하나가 되었다.3) 구성원들의 은사는 다양하고 그들 개인의 역할도 제각기 다른 것이다. 모든 역할이 저 나름대로의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몸을 완성하는 데 다 같이 동등하게 영광을 갖는다. 모든 평신도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은사를 통하여 교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살아있는 도구이며 증인이다.
∙성령의 성전인 교회: 교회는 성령께서 거하시는 곳(에페 2,17 참조)이며 성령의 전당이다(1고린 3,16-17 참조). 성령께서는 교회를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2고린 6,16; 1고린 3,16-17; 에페 2,21 참조)으로 만드신다. 그리스도께 봉헌되고 성령으로 도유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풍부한 열매를 맺도록 부름 받고 격려되며, 하는 모든 일들은 성령 안에서 행하며 영적 제물이 되어 미사 때에 성부께 봉헌된다(교회 헌장 34항). 물과 성령으로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은 성스러운 공동체 일원이 된다. 교회 공동체는 성령께서 각각의 개인에게 주신 은사들에 의해 풍요롭게 된다.
교회 헌장에서 발견되는 교회의 주된 3가지 이미지는 ‘참여’와 ‘공동 책임’으로 묘사될 수 있다.4) 이러한 개념들은 신자들이 그들의 은사를 충분히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교회의 지도력과 운영에 새로운 형태를 요구한다.
1.2 새로운 사회의 패러다임
1.2.1 새로운 사회의 구조
오늘의 사회를 지칭할 때 가장 널리 사용하는 말이 정보 사회(information society)이다.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분배할 수 있는 기술이 고도화되고, 모든 분야에 자동화가 획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정보망과 통신 혁명이 새로운 정보 문화를 형성해 가고 있다. 따라서 사회 조직의 형태로는 모든 조직과 구성원들이 서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그물망 사회(network society)이다. 따라서 중앙과 지방, 중심과 주변, 상급자와 하급자의 구분이 흐려지고, 각 부분이 모두 상대적으로 대등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양방향 의사 소통 사회(two way communication society)가 되었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양방향으로 의사 소통이 쉽게 이루어진다. 사회의 조직 원리는 지배-피지배 관계가 아닌 개별적 자율성에 바탕을 두게 되며, 위계 질서 조직보다는 상호 긴밀히 협조하는 수평적, 기능적 연결 형태의 새로운 조직이 보편화 되고 있다. 정보화 사회는 다원 사회(pluralistic society)를 이루게 한다. 사회적 힘의 근원이나 사람의 생활과 행위 양식이 다양하고, 개인적 선택의 폭은 더욱 넓어진다. 중앙 집중, 조직, 표준, 능률, 성장 등에 대한 가치는 분권화, 분산화, 다원화, 자율성, 개성, 창의, 발전 등으로 바뀌고 있다. 서로가 다양성을 인정하고 조화를 모색함으로써만 새 질서를 찾을 수 있다.
1.2.2 이루어야 할 사회 제도
새로운 삶의 양식과 제도에 적합하고 또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할 사회 제도의 기본적 특성에 대해 사회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5)
∙통합적 속성 : 다원 사회 속에서 다양한 가치관과 생활 모습이 전개되고 개별화 개체화로 치달을 수 있다. 그러므로 공통적인 가치관과 생활 양식을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 의식을 느끼도록 제도화 해야 한다.
∙평등한 인간 관계: 사회가 높은 부가 가치의 기술 정보 산업 중심으로 변해 가면서 전문 기술직 종사자의 구성비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 계급간의 차이나 성별의 차이는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불평등에 기초한 사회 제도는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유지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방식: 산업 사회는 자유 경쟁을 통한 효율성을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들이 중요한 전문적 기능을 담당하는 정보⋅그물망 사회에서는 서로 존중하고 협조하는 가운데서만 창의력이 발휘되고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 그러므로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 모두가 인간답게 잘 사는 길이다.
1.3 요구되는 지도력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시하는 교회는 ‘참가와 공동 책임’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지도력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정보화 사회는 다원화, 분산화, 분권화, 개별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통합적, 평등한 인간 관계,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바탕을 둔 사회 제도가 되어야 한다. 이런 사회에서 갖추어야 할 지도자의 모습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것이 되어야 한다. 전 시대의 지배적이고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사고 체계와 지도 자세로는 사회를 통합할 수도, 지도할 수도 없다. 탈권위적이고 평등한 인간 관계 속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게 하는 지도력을 요구하고 있다. 즉 오늘날의 교회와 사회는 공히 ‘참가와 공동 책임’, 그리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지도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2. 교회의 새로운 길
우리는 나아갈 방향을 알아야 갈 수 있다. 우리 본당도 마찬가지이다.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FABC) 5차 총회에서 새로운 교회상이 제시되었다. ‘공동체들의 친교의 교회’, ‘참여하는 교회’,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인 교회’이다.
2.1 소공동체들의 친교인 교회
아시아 주교님들은 다음과 같이 선포하셨다. “아시아의 교회는 공동체들의 친교가 되어야 하는데, 거기에서는 평신도와 수도자 그리고 성직자가 서로를 형제자매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들은 소공동체를 형성하도록 이끄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준성사적 현존으로 간주되는 하느님의 말씀에 의해 함께 불리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기도하고 복음을 함께 나누며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를 이루어 서로를 지지해 주고 함께 일함으로써 그들의 매일의 삶 안에서 복음을 살아간다.”6) 신자들은 그리스도에 의해 그의 사명에 참여하고 주교와 사제들과 함께 공동 책임을 수행하도록 초대받았다.7)
소공동체는 삶의 터전이 같은 동네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서 이룬 ‘작은 신앙 생활 공동체’이며 ‘현장 교회’이다. 신자들은 소공동체 안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나눔을 하며 그들 자신이 교회라는 것을 체험하고 적극 참여하는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된다. 소공동체 운동은 신앙 안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운동’이며, 소공동체 생활을 통해 자기와 세상을 복음으로 새롭게 하고자 하는 ‘복음화 운동’이다. 신자들은 소공동체에서 신앙을 중심으로 함께 살아가며 복음의 빛을 서로에게 비추고 일반 생활도 돕고 산다. 그것이 증거가 되고 복음을 사회에 비추고 활동함으로써 세상을 쇄신한다. 소공동체의 봉사자는 신자들을 보살피는 ‘소공동체의 목자’이다. 소공동체 운동은 초대 교회의 모습과 한국의 교우촌과 두레 공동체의 정신과 모습을 이 시대 상황 속에서 현재화 하자는 운동이기도 하다.8)
소공동체 운동의 정신은 동네에 신앙 공동체를 건설하고 그것이 모인 것이 본당이 되고자 하는 것만은 아니다. 모든 신자들이 참여하는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교회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2.2 참여하는 교회
2.2.1 그리스도와의 친교와 사명에 참여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예수님은 우리와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와의 관계로 비유하셨다(마태 9,14-15 참조). 우리는 세례 성사로 그리스도에 의해 하느님 자녀들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고, 견진 성사로 공동체의 성인 구성원이 되었다. 성숙한 가족은 가정 전체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한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이 사람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요한 17,18) 하시며 그의 사도요, 벗인 우리가 당신 몸의 일에 참여하도록 기대하신다.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가 오게 하는 데에 일역을 하도록 불림 받았다. 성체 성사 참여는 그 공동 책임을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2.2.2 공동 책임의 동료 일꾼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모두가 당신의 어머니요, 형제요, 자매라고 하셨다(루가 8,19-21 참조). 사도들과 초기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가는 곳 어디에서든 예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을 ‘자기 자신의 일’로 여겼다. 사실 사도들 없는 안티오키아에서는 평신도들이 교회를 건설했다(사도 4,32-35; 13,1-4 참조). 초기 교회는 형제자매 등 가족처럼 서로 느끼며, 서로를 돌보는 책임을 가졌고,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가족 공동체로서 그를 위해 기도했다.
성 바오로는 그의 동료를 단순히 ‘그의 협조자들’이라 부르지 않고 “동료 일꾼들” 그리고 “주님의 뽑힌 종들”이라 하였다. 초기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주신 사명을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수행하였다. 이것을 우리는 공동 책임(co-responsibility)이라 부른다.9) 참여와 공동 책임은 우리 본당 내에서도 가능하다. 왜냐하면, 세례 받고 견진 받은 신자들은 달란트와 성령의 선물들을 받았고, 그것은 공동 이익을 위한 것이다(1고린 12,4-11; 로마 12,6-8 참조). “각자가 받은 은총의 선물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가지고 서로 남을 위해 봉사하십시오”(1베드 4,10). 서로 도와 주고 참여하고 협력할 때 비로소 교회는 살아있는 몸이 될 수 있다.
2.2.3 평신도의 본질과 사명
평신도의 본질과 사명에 대해 공의회 문헌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사목자들은 세계 구원을 위한 교회의 사명을 독점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로부터 선정된 것이 아니고, 오직 모든 신도들로 하여금 공동 사업에 일치 협력하도록 그들을 사목하고 그들의 봉사와 은사를 인정…”(교회 헌장 30항) 해야 한다. “평신도는 곧 세례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하느님 백성으로 구성되고,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자직과 왕직에 자기 나름대로 참여하는 자들이 되어, 그리스도교 백성 전체의 사명 가운데에서 자기 몫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말한다”(교회 헌장 31항). “교회 안에서 모든 이가 똑같은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남을 위하여 교사나 신비 관리자나 목자로 세워졌지만,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공통된 품위와 활동에서는 참으로 모두 평등하다. 주님께서 거룩한 교역자들과 나머지 하느님 백성을 구별하셨지만 그 구별은 동시에 결합을 가져 온다”(교회 헌장 32항).
평신도는 그리스도의 일반 사명을 공동으로 책임지며 함께 하는 일꾼들이다. “교회의 새로운 길은 성령의 선물이 모든 신자들-평신도, 수도자, 성직자-에게 똑같이 주어졌음을 인식하고 그것으로 함께 활동하는 참여하는 교회이다. 그리하여 교회가 성장하고 선교가 실현된다.”10)
2.2.4 참여와 성장
소공동체는 이웃 안에서 그리스도 사명에 참여하고, 위원회들과 단체들은 본당 내부의 생활에 참여한다. 다른 이들은 본당 외부의 세계에 대해 교회의 일반 사명을 수행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교회 활동에 참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고, 또한 파견되었다(루가 10,1-9 참조). 공동체가 활성화 되기 위해서는 달란트를 사용하는 몇 사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참여하여 우리 모두가 각자의 달란트를 사용한다면 우리는 함께 성장할 수 있다.11) 우리가 바라는 것은 전체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동체의 생활과 책임에 동참하도록 하는 것이다. 모두가 사목회에 들어갈 수는 없다. 모두가 성가대에 들어갈 수 없고, 모두가 교리 교사로 직접 가르치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모두가 그 직분에 대해 함께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모두가 병자 방문에 나서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일에 동참한다는 느낌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12)
2.3 버려야 할 교회의 모습
∙지배적이고 독단적인 지도력은 사라져야 한다. 한국 교회는 사제 의존도가 너무 높다. 지배적이며 독단적으로 본당 일을 처리하는 모습은 이제 사제나 수녀나 어떤 간부에게서도 사라져야 한다. “당신들은 잘 모른다. 당신들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내가 당신이 할 일을 말해 줄 테니, 그대로 행하시오” 등의 말은 없어져야 하겠다.
∙수동적인 수혜자의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평신도들은 사제가 모든 것을 먼저 시작해 주기를 그리고 필요한 것을 준비해 주기를 기다린다. 사목 지도자들은 신자들을 위해 자기가 모든 것을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신자들이 개별적으로 있는 본당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은 주일에 교회에 가지만 그들은 개별적으로 있으면서 다른 신자들과는 어떤 연대도 없다. 이런 교회에는 소속감과 신자들 간에 인격적인 만남이 없다. 따라서 공동체가 형성되지 않고, 서로 간의 나눔과 섬김 속에서 하느님을 체험하지 못한다.
∙신자들이 사제의 단순한 협력자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처럼 평신도는 성직자의 연장된 팔로서의 심부름꾼 역할만 해서는 안 된다.
∙일부 신자만 참여하여서는 안 된다. 위원회와 단체에서 바쁘게 활동하고 있는 신자들은 전체 신자의 10% 미만이었다. 이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있는 성령의 선물과 달란트를 10%만 사용했다는 말이다. 이제 소공동체가 생겨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수동적이고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3. 새로운 양식의 지도력
교회의 새로운 길에 적합한 지도 양식은 용기와 영감과 힘을 주고 스스로 할 수 있게 하는 지도력이어야 한다. 어떤 양식의 지도력이 그런 것인가? 아시파13)와 룸꼬 연구소14)의 내용을 기본으로 하여 제시하고자 한다.15)
3.1 안내하는 지도력(Guiding Leadership)
3.1.1 안내자
‘공동체들의 친교의 교회’, ‘참여하는 교회’는 함께하며 안내하는 지도력을 요구한다. 떠먹이며 주입하고 힘으로 이끌어 가기보다 스스로 깨달아 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지도자의 모습이어야 한다. 예수님의 경우를 보자. 제자들이 길에서 서로 다투고 잘못된 생각을 할 때도 즉시 지적하지 않고, 집에 갈 때까지 기다리고 나서야 부르셨다. 야단치거나 비난하지 않고, 어른처럼 존중해 주셨다. 질문을 던져 자기 스스로 잘못한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 주셨다(마르 9,33-37 참조). 교훈적인 말이나 새로운 안목을 주입하지 않고 스스로 깨닫도록 하셨다. 예수께서 보여 주신 지도력은 함께 하며 안내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격려하는 지도력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벗이라 부르신다. 이것은 당신이 주님임에도 그들을 동등하게 대하신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때때로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서 대화와 빵을 나누면서 일치를 이루셨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여행하면서, 생활의 예를 사용하면서, 그들의 질문을 존중하면서 가르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에로 인도하시는 안내자이시다. 제자들에게 섬김의 모범을 보여 주시며 안내하는 지도력을 가지라고 당부하셨다. 주교, 신부, 수녀, 본당 회장, 간부, 교리 교사 등 모든 교회의 지도자들은 안내하는 지도력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배적인 것을 포기하는 것은 지도자들에게 어려움을 느끼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영적인 도전이다.
3.1.2 지배적인 지도력과 안내하는 지도력 비교16)
지배적인 지도력 |
안내하는 지도력 |
제공함으로 봉사한다. 숟가락으로 떠먹인다. 내가 그들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 내가 그들에게 말해 주어야 한다. 그들은 아는 것이 없다. 내가 모든 것을 시작해야 한다. 나는 사람들을 위해 모든 것을 한다. 나는 신학을 공부했다. 내가 사람을 선정한다. 내가 내 백성들을 알기에 이것이 여러분을 위해 좋은 것이다. 토론은 시간 낭비다. 내가 결정한다. 나는 그들을 믿을 수 없다. 나는 나의 일을 위해 협조자가 필요하다. 비판하지 마라. 어떻게 그런 제안을 할 수 있나? 내가 본당 신부인데(수녀인데). |
나는 사람들이 성장하기를 원한다. 그들 스스로 보도록 도와 준다. 방향을 제시한다. 영감을 준다. 사람들이 격려 받고 활기 있기를 원한다. 어떤 실망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사람들을 믿는다. 사람들의 재능을 발견하기를 좋아한다. 사람들을 훈련한다. 나의 책임을 나눈다. 귀 기울인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토론하고, 함께 결정한다.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 우리는 공동 사명이 있다. 마음이 아파도 비판을 받아 준다. 나는 평신도를 형제자매로 받아들인다. 나는 사람들을 존중한다. “당신들 스스로 결정하시오.” |
내가 교회다 |
우리가 교회다 |
3.1.3 촉진자(facilitator)
격려하고 대화와 나눔을 촉진시켜 사람들이 스스로 깨달아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는 기쁨을 얻도록 돕는 사람들을 촉진자라고 부른다. 공동체 각 사람의 지혜와 가능성에 신뢰를 가지고, 질문으로 자신들의 지혜를 끄집어내도록 유도하고, 사람들이 공동체에 관여하도록 동기를 유발시킨다. 사람들의 체험과 지식을 나누고 서로에게서 배우도록 도우며,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에 참가자들을 참여시킨다.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와 참여자가 모두 서로 묻고 토론하며 답을 함께 찾아가는 참여적인 교육 방법으로 사람들이 깨닫도록 돕는다. 강의식 교육 방법의 강점은 정보와 지식을 발표하는 데는 효과적이나 참가자들 자신의 지식이 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참여적인 교육 방법은 자신의 지식과 가능성 안에서 성장하여 멀리 가도록 그들을 돕는다.17)
예수님은 촉진자의 모델이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에게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그들과 함께 길을 가시며, 질문하고 듣고 또 말씀하시고 성서를 설명하시고, 그들과 함께 머무시며 그들의 눈을 뜨게 하셨다(루가 24,13-35 참조). 예수님은 자주 촉진자 스타일의 지도력을 행사하셨다. 그분은 진리를 사람들이 스스로 발견하기를 원하셨다. 예를 들면, 그분은 이야기, 속담, 비유로 말씀하였고 청중들이 스스로 그 뜻을 알아내도록 하셨다. 예수님은 당신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과 직면하고 바로 잡아 주실 때도 비유나 질문을 사용하셨다(루가 10,25-37).
안내하는 지도자는 방향을 제시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가도록 촉진하며 도와 주고, 공동체에 혼과 기운을 불어 넣어 활력을 주는 자이다. 복음 나누기의 예를 들면, 진행자는 그룹의 구성원을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그는 참석자들을 어른으로 대하면서, 그리스도를 만나도록 도와 준다. 진행자는 다른 사람에게 기도하도록 기회와 용기를 주고, 복음 구절을 안내하고 다른 사람이 읽도록 한다. 나눔을 할 때도 그가 먼저 하지 않는다. 예비 신자 평신도 교리 교사도 많이 알아서 가르치는 지도자가 아니라 먼저 전해 받았고 깨달은 자로서 함께 구원의 여정을 가는 안내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3.2 활기를 주는 지도력
3.2.1 예수님과 초대 교회의 지도 양식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시고 따라 하라고 당부하셨다(요한 13,1-17 참조). 그리고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마르 9,33-37 참조). 섬기는 지도자가 되라는 말씀이다. 어느 목사님은 자신을 “저는 A교회를 섬기는 김 목사입니다” 라고 소개하였다. 매우 인상적인 말이었다. 예수님은 당신의 복음 선포에 제자들을 참여시키시고 필요한 수련과 실습을 충분히 시키시고, 제자들의 성공에 함께 기쁨을 나누셨다(루가 10,1-21 참조). 그분은 당신의 권위를 제자들과 나누셨으며, 이방인 여인의 지적을 받아들이셨다(마태 15,21-28 참조). 그분의 지도력은 모범을 보이고 참여시키고 격려하며 활기를 주는 것이었다.
초대 교회에서는 지배하려 하지 않고(1베드 5,3 참조), 함께 일하고(2고린 1,24 참조), 공동체 전체가 선교사들을 파견하고(사도 13,3 참조), 지도자를 지적하는 일이 허용되었다(갈라 2,11 참조). 지도자는 원로들과 토론한 다음 결정하였고(사도 15,6-7 참조), 지도자 선출에는 공동체가 참여하였다(사도 1,15-26 참조). 초대 교회는 교회 직무를 철저하게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지배와 통치가 아닌 ‘섬김’ 혹은 ‘봉사’로 이해하였다.18)
3.2.2 활기를 주는 지도자의 태도19)
① 사람들에게 활기를 주고 적극적이 되도록 돕는다.
② 사람들이 스스로 일할 수 있고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밀어 주고 도와 준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거나 실패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다른 사람들을 교육하기를 좋아한다.
③ 사람들을 신뢰한다. 가장 미소한 사람들 안에도 특은과 자질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④ 다른 사람들이 더 큰 능력들을 개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⑤ 팀을 이루어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팀 구성원들이 가능한 한 동등하기를 바란다.
⑥ 어떤 지식이나 정보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주어, 그들이 동등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사고를 개발하기를 바란다.
⑦ 사람들이 자유롭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게 의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⑧ 모든 것을 자기가 제안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제안을 인정해 주고 공동체가 솔선해서 일하기를 원한다.
⑨ 사람들 스스로 아이디어와 해결책을 발견하기를 원한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발견하도록 도와 준다.
⑩ 가능한 한 다른 사람을 키워 준다.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제안한 방법이나 의견을 억제하는 짓을 하지 않는다.
⑪ 자기만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동체가 자체의 지도자를 제안해서, 자기가 없어도 공동체가 발전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기회를 준다.
⑫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두거나 군림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사람들 가운데 있기를 원한다.
⑬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때 내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과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을 때에만 저지시킨다.
3.2.3 지도력의 전환
본당의 변화를 원한다면, 나 자신이 변화되어 다음과 같은 지도력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20)
지배하고 위압하는 지도력 |
활기를 불어 넣는 지도력 |
지도자가 모든 결정을 하며 그의 아이디어를 완성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한다. |
사람들로 하여금 좋은 결정을 하도록 유도한다. 일이 미완성이라도 사람들의 일치를 위해 노력한다. |
특별한 의자(자리)에 앉는다. |
다른 일반 사람들처럼 사람들과 함께 앉는다. |
지도자가 말하고 다른 사람들은 듣는다. |
쌍방향 의사소통이다. 모든 사람의 기여를 격려하며 최소한의 방향만을 제시한다. |
사람들의 의견은 중요치 않으며 그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
비록 더 좋은 의견이 있더라도, 사람들의 의견을 소중히 생각하며, 신중하게 듣는다. |
지도자가 제시하는 대부분의 의견은 실패에 대한 비판과 충고, 수정 지시이다. |
지도자의 말은 좋은 점들을 칭찬하는 것이며, 실수들로부터 배우도록 하는 격려이다. |
지도자를 비판하는 것은 금지된 행위이다. |
지도자에 대한 비판은 항상 용인된다. |
지도자는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사람들은 몰라서 항상 지도자로부터 들어야만 한다. |
지도자가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더 좋은 정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
일방적 학습 방식: 지도자가 가르치고, 사람들은 배운다. |
지도자는 배우는 과정을 함께 촉진한다. |
사람들에 대한 지도자의 기대치가 거의 비현실적이다: 빠른 결과를 기대하며 사람들이 실패했을 때 쉽게 포기하며 비난한다. |
기대치가 보다 현실적이다: 사람들이 힘을 합쳐 이끌어낸 모든 것에 대해 만족한다. 결코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
대부분의 행동은 계획되지 않은 것이다. |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계획을 수립한다. |
모든 중요한 것과 공로는 지도자의 것이다. |
모든 공로가 구성원들에게 돌려진다. |
이 외에도 ‘가르침’에서 ‘공동 연구와 배움’의 태도로, 사람에 대한 ‘불신’에서 ‘신뢰’로, ‘효율 우선’에서 ‘참가 우선’으로, ‘비계획적’인 행위에서 규칙적이고 시스템적으로 ‘계획된’ 행위로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공동체에서 지도자를 확보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지명하지 말아야 한다. 여러 본당에서 쉽게 사제가 구역장, 반장, 단체장을 임명하고 있다. 어떤 일에 적합하여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사람을 선출하고 임명하는, 떠오름과 선출과 임명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좋다.21) 이런 봉사자는 사람들로부터 협력을 얻고 사제로부터 힘을 얻어 주어진 일을 훌륭히 수행하게 될 것이다.
3.3 참여시키는 지도력
3.3.1 함께 하는 지도자
지도란 공동 이익을 위해 각자 받은 은사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역할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모두를 참여시키는 지도력을 가져야 한다. 본당 생활과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켜 함께 공동 책임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혼자서 일을 처리하지 않고 여러 사람들을 참여시키어 그들의 의견을 듣고 토론하고 함께 결정하는 지도력을 발휘하여야 한다.
복음 나누기를 하든 다른 것을 하든 사람들을 참여시키는 모습이어야 한다. 복음 나누기를 할 때 진행자가 앞서 또는 제일 뒤에 발표하거나 기도하지 않는 것은 바로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키기 위해서이며 주도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교리 수업도 주입식 대중 강연식 방법이 아니라 참가자와 함께 탐구해 가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각종 위원회에서도 위원장이 혼자서 계획하고 실천하기보다 위원들이 하도록 기회를 주고 일거리를 창출하여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많은 신자들을 참여시키어 신자들이 많은 역할을 맡게 될 때 그 지도자는 많은 사명을 사람들과 함께 그들이 가진 많은 달란트를 사용하여 훌륭히 수행할 수 있게 된다.
3.3.2 참여와 공동 책임
전에 비해 평신도들의 교회 참여도가 높아졌다. 사목 위원이 되어도 이름만 걸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사목 협의회 각 위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으며, 또 나름대로 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여 제 역할을 다할 때 가능하다. 참여한다는 것은 나의 일로 여긴다는 것이다. 참여를 통하여 ‘공동체의 동일화’가 증대된다.22) 참여는 함께 생각하여 공동으로 결정하고 공동으로 추진하게 한다. 또한 그 결과에 대해서도 공동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직자의 열성과 의견, 그리고 능력만으로 좋은 본당이 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성직자와 일반 신자 모두가 함께 참여하고 공동 책임을 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참여하고 공동 책임으로 추진할 때 일이 성취될 수 있다. 책임이 주어진 사람에게 권한 또한 주어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신자들이 교회 일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성직자나 수도자가 다 결정하고 처리하여 신자들의 참여를 아예 원천 봉쇄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사목자는 신자들과의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며 신자들의 기를 죽이지 말아야 한다. 위로와 칭찬으로 활기를 심어 주며 참여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기회를 열어놓아야 한다.
교회의 새로운 길에 있는 새 지도자의 모습은 위에서 제시한 내용 외에도 다음의 역할을 제안할 수 있다. 방향 제시자(navigator)로서 본당이 나아갈 방향과 목표를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동기 유발자(motivator)가 되어 사람들이 자신의 소명과 사명을 발견하도록 도와야 한다. 또한 형성자(formator)로 신자들을 훈련하고 교육하여 의식을 형성해 가야 하고, 조정자(coordinator)가 되어 공동체의 이런 저런 일들을 조정하고 주선해야 한다. 무엇보다 구원의 여정에서 신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지지해 주며 동행하는 동반자(Partner)이어야 한다.23)
4. 새로운 지도력의 시도들
4.1 기초 공동체의 추대로 사목 협의회 구성
사목 협의회를 구성하는 절차는 대부분의 본당에서 대체로 다음과 같다. 먼저 사목 회장을 사목 협의회 총회에서 선출하거나 본당 신부가 지명하여 임명한다. 회장이 회장단을 구성하고, 각 위원장(부장)을 추천하여 인준 받고, 위원장이 같이 일할 위원들을 구성한다. 즉 위에서부터 아래로 정해진다. 윗자리의 직책자부터 정해지고 그 사람이 다음 직책자를 추천 또는 선임하여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음동 본당에서는 반대로 구성해 갔다.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구성하였다. 우선 12개 구역에서 자기 구역에서 본당 사목 협의회에 참여할 사람을 추대하였다. 총 11개 위원회 중 적어도 5개 위원회에서 일할 사람을 추대하게 하였다. 그리고 현 위원장이 추천하고 본당 신부가 위촉한 사람들과 관련 단체장은 당연직이 되어 각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렇게 먼저 각 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위원회 위원들이 자기들의 일을 주선하고 주도할 위원장을 선출하고 본당 신부의 인준을 받았다. 위원회 안에서 업무를 분야별로 나누어 분과를 두는데 분과장의 선출도 같은 절차로 이루어졌다. 사목회장은 각 위원회 위원 전원과 구역장, 반장, 단체장들이 모인 사목 협의회 총회에서 선출하였다. 그리고 본당 신부의 인준 절차를 거쳐 임명되었다.
이렇게 소공동체에서 파견한 사람들이 사목회를 구성함으로써 사목회와 소공동체가 긴밀하게 연결되었고, 위원장과 위원들은 힘을 얻어 활동할 수 있었다. 즉 대중 신자들로부터 주어지는 힘과 임명한 본당 신부로부터의 힘이 함께 주어진 것이다. 위에서부터 지명된 것이 아니고 신자들로부터, 특히 자신이 속한 소공동체로부터 추대되고 파견되었기에 위원회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비율이 높다.
회장단과 위원장들 회의(상임위원회)를 월 1회 개최하고 그 다음 주일에 각 위원회별 회의를 갖고 있다. 상임 위원회에서는 본당의 전반적인 생활과 사명에 대해 심도 있게 토론하고 결정한다. 각 위원회에서는 해당 위원회 업무에 대해 논의하고 분과별 또는 공동 활동 계획을 수립한다. 전에는 비록 위원회가 구성되고 위원들이 있더라도 통상 위원장이 혼자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경우 아이디어가 빈약하고 추진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이 부대껴서 지치기가 일쑤이다. 아직은 힘이 없는 위원회가 있긴 하지만 차츰 그 역할이 활발해지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어떤 위원회는 공동 활동으로 열심히 그리고 힘 있게 자기 책임을 수행하고 있다.
4.2 가정 교리(소공동체 교리) 운영
4.2.1 가정 교리란
예비 신자 교리를 성당에서 대중을 상대로 신부나 수녀가 하지 않고, 소공동체별로 가정에서 평신도 교리 교사가 하는 것을 말한다. 각 교리반은 예비 신자 3-5명 정도의 소수로 구성된다. 교리반 구성은 구역별 혹은 반별로 하고 교리 교사는 그 구역 혹은 반에 속한 사람으로 정한다. 교육을 하는 장소는 성당이 아니고 가정에서 한다. 이미 여러 본당에서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가음동 본당에서는 2003년도에 일정 자격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양성하여 30명의 평신도 교리 교사로 가정 교리를 시작하였다. 주1회 평신도 교리 교사가 교육하고 신부와 수녀가 월1회 교리를 종합하여 강의한다. 어려움도 있지만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4.2.2 취지와 성과
∙예언자직 수행으로 교회 활동에 참여 의식을 높인다. 평신도 교리 교사 뿐 아니라 소공동체의 동네 신자들이 예비 신자 교육에 일정 부분 참여하게 된다. 교리반을 구역 혹은 반별로 구성하고 교리 교사도 그 구역에서 나오고, 동네 신자들이 각종 보살핌과 대부모 주선 등 세례 준비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영세 전후의 보살핌과 인도를 소공동체가 하는 것이 쉽고 효율적이다. 예비 신자는 소공동체의 꽃과 같은 존재임을 볼 수 있었다. 마치 가정에 아이가 탄생하면 집안의 꽃이 되어 온 가족들의 관심과 보살핌과 기쁨의 대상이 되는 것과 같다.
∙신앙 생활 교육이 될 수 있다. 신앙이 생기는 것은 신앙 지식 터득으로써만이 아니고 생활로써 전염되는 것이고 생활로써 익숙해져야 자란다. 실제 생활하는 동네에서 소수 단위로 교리 공부를 함으로써 교리 지식 전달에 끝나지 않고 생생한 신앙 생활 지식을 전달할 수 있다. 배운 교리가 생활화 되고 교회 생활에 익숙해지며 신앙이 자라도록 도와줄 수 있다.24)
∙소속감과 유대감을 갖게 되고 탈락자가 적다. 교육 받는 동안 동네 소공동체 신자들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비 신자 시절부터 소공동체에서 신자들과의 친교를 이루고 또한 교리 교사와 예비 신자 사이에 일체감을 높일 수 있다. 그리고 예비 신자들의 생활 환경 등 정도에 맞게 눈높이 교리를 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교리 시간 조절도 용이하기에 세례 성공률이 전에 비해 높다(65%→85%).
∙냉담자 발생을 방지할 수 있다. 새 영세자들이 1년 내에 거의 반 정도가 냉담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가정 교리를 통해 영세 전부터 소공동체에 속하고 보살핌을 받게 되므로 냉담이 방지된다. 처음이라 아직은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가정 교리를 통해 세례 받은 새 신자들의 지속적인 신앙 생활률이 전에 비해 높다(50%→80%).
가정 교리 제도의 단점도 발견된다. 예비 신자들이 성당에 올 기회가 많지 않고 성직자와 수도자와 만날 기회도 적다. 평신도 교리 교사가 교리 지식이 부족하여 교리 전달이 명확하지 못하거나, 권위를 얻기 어려워 예비 신자들이 가르침에 대해 신뢰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4.2.3 교리 교사의 역할
교리 교사는 모든 것을 다 알고 가르치는 선생이나 지도자가 아니라 비 지배적인 지도자로서 함께 공부하며 예비 신자들을 인도하는 사람이다. 교리 교사는 질문하고, 토론을 유도하고 수강자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도와 준다. 교리 교사는 보충하여 정리하여 준다. 많은 것보다 기본 교리를 정확하게 알게 한다. 예비 신자들이 교리 교사 정도의 신앙 지식과 신앙심을 갖게 되어도 신자로서 첫걸음을 시작하는 데 충분하다. 교리 교사는 신앙의 선배로서 신앙 여정에서 함께 주님을 찾고 함께 주님을 향해 가도록 안내하고 격려하고 활기를 주는 사람이다.
4.2.4 소공동체의 보살핌
소공동체는 자기 반에 속한 예비 신자들을 잘 보살펴야 한다. 교리가 시작되면 소공동체에서 초대하여 축하 모임을 가져야 하고, 예비 신자들이 소공동체 모임에 계속 참석하도록 안내한다. 자주 방문하여 격려하고 가정을 위해 기도해 준다. 주일 미사와 교리반 참석 여부를 확인하고 계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돌보며 인간 관계를 유지한다. 소공동체에서 대부모를 주선한다.
세례 성사 후 간단한 축하 모임을 갖는다. 소공동체 생활에 적극 참여하도록 안내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소속감과 유대감을 준다. 실제로 신앙 생활을 하는 생활 교리를 보충해 주고, 주일 미사 참석과 기도 생활을 확인하여 격려한다. 방문과 전화 등으로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보여 준다. 견진 성사를 받을 때까지 교회 생활 전반에 동반하며 지속적으로 보살핀다.
5. 새 지도력을 위한 제안
5.1 지도력 나눔과 분산
지도력은 “공동 목표 달성을 위해 각 구성원의 능력을 잘 동원하게 하는 것”이며, “공동체가 성장토록 유도하는 직무”이다.25) 지도력은 교회 생활과 임무 수행을 움직이는 구조이다. 과거 교회의 지도력은 단 한 사람, 즉 사제의 소유로 나타났다. 사제는 신앙 공동체의 유일한 지도자로 생각되고 선생님, 치유자, 상담가, 행정가, 재정 책임자, 전례 주관자이다. 지도력이 한 개인에 머무는 것으로 간주되면 권한 또한 지도자 한 사람에게 머무는 것이 된다.
∙지도력과 업무 나눔: 교회의 비전이 ‘소공동체들의 공동체’와 ‘참여하는 교회’라면 지도력은 바로 그 목적을 위해 발휘되어야 한다. 참여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사제가 교회의 지도력을 다른 이들과 나누어야 한다. 사목 회의 위원회들과 본당 수녀와 구역장과 단체장들과 나누어야 한다. 지도력을 나눈다는 것은 성직자가 평신도와 나누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평신도들끼리도 서로 나누는 것도 의미한다. 다양한 업무나 책임이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돌아가도록 지도력의 분산을 꾀하여야 하겠다. 지도력 나눔의 한 형태로 팀 활동(team work)과 팀 지도력(team leadership)을 들 수 있으며 그 성과와 효율성은 크다고 본다.
∙결정 기능 분산과 권한 나눔: 지도력을 나누는 것은 타인의 역량과 재능을 깊이 신뢰한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한 사람이 완벽할 수 없다는 것과 한 사람만의 재능이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킬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지도력 분산과 나눔은 결정 기능도 또한 분산되고 나누게 된다. 각 위원회 등에 결정 기능을 증가시켜야 한다. 지도력의 나눔에는 권한의 나눔이 따라야 한다. 힘은 성직자의 중재에 의해 천국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으로부터 공동체에 흘러 들어오는 것이다. 권한의 나눔은 각자가 공동체의 생명을 위해 서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당 사목 협의회는 본당 사제와 높은 수준에서 역할과 권한을 나누고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
∙일인 일 직책 갖기: 현재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직책을 담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맡길 만한 책임자를 구하기 어려워 한 사람이 중복된 업무를 맡고 있는 것이다. 또 간부는 아니더라도 한 사람이 여러 단체에 가입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따라서 자기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기가 어렵고 지친다. 가급적 많은 평신도가 교회의 생명과 사명을 책임지게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일인 일 직책’ 갖기를 하여야 하겠다. 가음동 본당에서 2003년 사목 세미나를 통해 결정된 사항 중 하나이다. 현재 추진 중이나 과도기적 문제점이 발견되어 속도와 정도를 조절하고 있다.
5.2 참여의 장과 위원회 강화
사목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은 신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장과 기회를 많이 마련해야 한다. 가능한 한 모든 신자들이 본당 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주선해야 한다.
∙자기 소공동체에 우선적 참여: 모든 신자들은 자기 동네의 소공동체에 우선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소공동체는 유대와 참여와 봉사의 장이며, 기회이다. 소공동체에서 서로를 위해 또 자기 공동체와 동네, 그리고 본당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소공동체가 제대로 될 때 자율적인 교회, 참여하는 교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여유가 있고 특별한 은사가 있는 사람들은 단체에도 참여하여 특색 있는 활동으로 서로와 본당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
∙사목회 각 위원회별 활동의 강화: 혼자서 봉사하기보다 팀으로 일해야 한다. 본당의 생활과 사명의 각 분야는 사목회 각 위원회가 나누어 분담하고 있다. 선교, 냉담자 사목, 신자 교육, 전례, 청소년 사목, 사회 복지 등 여러 위원회별 활동이 잘 되도록 사목적 배려를 하여야 한다. 그리고 교회 행사와 건물 관리, 재정 관리 분야 위원회에도 여러 사람이 참여하고 원활한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분야에 신자들이 성직자보다 지식과 경험이 월등히 나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교회의 풍요로움을 위해서는 각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을 지닌 신자들의 참여가 절실히 필요하다. 많은 신자들이 자기 적성에 맞는 위원회에 참여하여 자기 몸인 공동체를 풍요롭게 하고 키우는 데 기여하고 보람과 기쁨을 얻어야 한다.
∙평신도 예비 신자 교리 교사: 평신도가 예비 신자 교리 교사 등의 예언직에도 깊이 참여하여야 한다. 가르치기 위해 공부하면서 자기 쇄신을 이루어야 하며, 모범을 보이며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 갈 것이다. 교리와 신앙심 면에서 질 높은 평신도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면 그들을 통해 교회는 새로운 힘을 얻게 되고, 본당 전체가 성숙되어 갈 것이다.
5.3 많은 직책을 소공동체에 위임
많은 직책을 소공동체와 구역 안에서 나누어 일을 분담하여야 한다. 오늘날은 분권화 시대이다. 반장 혼자서 다 활동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선교, 병자 방문 등 각종 활동을 반장이 다 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반장은 발로 뛰는 사람으로 이해하여 연말이 되면 신발을 반장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반원들이 움직이지 않으니 반장이 많은 일을 해야 한다지만 바람직한 소공동체의 모습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그런 반장이 좋은 지도자는 아니다. 많은 사람을 활동에 참여시켜야 한다. 활동을 분담하고, 함께 일하도록 준비하고 주선하고 격려하는 반장이 잘 하는 것이다. 솔선수범이 좋은 덕목인 것처럼 생각하겠지만, 또 경우에 따라 그렇게 해야 하겠지만, 더 좋은 덕목은 많은 사람을 참여시켜 함께 하도록 해 주는 지도자가 더 잘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을 참여시키기 위해서는 소공동체 안에서 많은 직책을 두고 나누어서 봉사해야 한다. 레지오 마리애는 10명 내외의 단원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안에 4간부가 있다. 보통 10-15가족으로 구성된 소공동체에 반장과 총무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구역에도 구역장 혼자 있는 경우가 많다. 봉사자 직책을 늘려야 한다. 구역 안에 부구역장 총무, 서기, 회계, 봉사 부장, 선교 부장, 교육 부장, 청소년 부장 등, 본당 사목회와 같은 직책을 두어 신자들이 그 일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반에도 가능하면 여러 직책을 두어 그들이 모여 구역 차원에서 각 분야의 일을 찾아 기획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모이면 바로 본당 사목회의 각 위원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나가며
변화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 단체들은 지금까지 신부가 나서서 일들을 잘 처리해 주었는데, 이제 스스로 하는 것이 좋다니 당황해 하기도 한다. 심지어 신부가 관심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며 섭섭해 한다. 본당 수녀들도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해 한다. 지금까지 공동체나 단체들을 일일이 챙겨 주고 먹여 주며 지도하고 보살펴 왔는데, 그렇게 하지 말라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힘들어 한다. 모두가 새로운 지도력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해 가야 하겠고, 스스로 하는 자율성을 강조하는 정도도 속도 조절이 있어야 하겠다.
새 지도력은 많은 신자들을 봉사직에 참여시키는 것이지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시간이 없어 참여가 쉽지 않는 것이 현실인 점은 두더라도, 봉사하다가 오히려 자기 신앙에 해를 입고 심지어는 교회와 멀어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또는 교회 상식에 미치지 못하는 발언을 당당하게 하여 답답한 경우도 있다. 참여와 함께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평신도의 질적 향상의 저변 확대와 봉사자의 자질이 높아져야 한다. 그 때 참여의 기회와 봉사의 질이 높아질 것이다. 교회 쇄신은 평신도가 교회에 깊이 참여할 때 가능한 것은 분명하나 자질 향상이 동반되어야 한다.
제안한 세 가지 지도력은 서로가 무관하지 않다. 지배적이고 통치적이며 먹여 주는 지도자가 아니라 사람들을 촉진하고 안내하는 지도력은 활기를 주고, 사람들을 공동체와 봉사직에 많이 참여시키게 한다. 이 세 가지 지도력은 하나의 다른 면으로 하나의 지도력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즉 섬김의 지도력이다. 섬김은 곧 봉사며 안내하는 것이며 활기를 주는 것이다. 섬길 때 모두가 참여하게 된다. 이런 새로운 지도력은 본당의 생활과 사명 수행에서 교회의 새로운 길을 창조할 것이다.
'~신자공동체~ > 사목위원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 본당 일구기 (0) | 2006.08.05 |
---|---|
본당 단체에 대하여.. (0) | 2006.08.05 |
사목자의 리더쉽 10계명 (0) | 2006.08.05 |
여성의 눈으로 보는 한국 가톨릭의 권위주의 (0) | 2006.08.05 |
"교회의 새로운길과 새 지도력"에 대한 논찬 (0) | 2006.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