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르실료 운동의 시작과 전개
꾸르실료 운동은 1940년대에 탄생했다. 공식적으로는
19세기 초부터 말 사이에 있었던 세 차례의 내전(1821∼1823년, 1833∼1840년, 1869∼1876년)은 스페인 전역을 혼란과 무질서로 만들었고 그 틀 사이에서는 무신론적 경향을 띤 세력의 발생 그 리고 그에 가세된 이념주의 곧, 좌익 혁명적 노선의 세력 등이 고개를 들었으며, 1930년대까지 접어들게 되었을 때 가톨릭 교회 일각에서 내전 이전에 향유했던 교회의 강하고 신앙으로 가득 찼던 그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기운이 일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당시의 사회 현실을 극도의 무질서와 그 무질서 안에서 발생된 죄의 권세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고, 그로 인하여 만들어진 반그리스도적· 비그리스도적 환경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만들고 있다고 믿었으며, 그것을 역전시켜 그리스도적인 세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무렵에 개최되었던 스페인 가톨릭 청년 연합회 제2차 총회(1932년)에서 다음 제3차 총회를 1937년에 개최하면서 그 기간 동안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의 젊은이들과 함께 산티아고 데 콤 포스텔라로 대대적인 순례를 시행하기로 확정했으나 1936년 내전이 다시 일어나 중단되고 말았 다. 1939년 내전이 끝나자 젊은이들은 즉시 조직을 정비하여 산티아고 순례를 위한 계획을 세우 고 발표했다. "100,000명의 모든 젊은이들 산티아고로!"라는 구호 아래 목표 달성을 위하여 국 가위원회의 주도 아래 모든 교구에서 "순례자들을 위한 상급반 꾸르실료"를 실시했고, 각 교구 에서는 모든 성당에서 "순례 지도자들을 위한 꾸르실료"를 실시했다. 그중 마요르카 교구는 "순 례자들을 위한 상급반 꾸르실료"를 요청한 첫번째 교구였다.
최초의 꾸르실료는 1941년 4월 Nuestra Senora del Liuc에서 열렸다. 뿐만 아니라 같은 해에 마 요르카 교구 청년 연합회 젊은이들은 별도로 순례 지도자를 배출하기 위해 “순례 지도자"라는 이름으로 9번의 또 다른 꾸르실료를 그들 독자적으로 실시했다.
한편 상급자 꾸르실료(전국 협의회)에 봉사했던 젊은이들 중 에두아르도 보닌 형제와 몇몇 마요 르카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순례가 시행되기 이전부터 순례만을 위한 꾸르실료보다는 교회의 운 동으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꾸르실료의 과정은 침묵 피정 등 이냐시오의「영신수련」의 주요 내용을 종합하여 7일 간의 일정 으로 실시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 7일 간의 일정은 실제로 꾸르실료 주말에 참가하는 이들에게 는 여러 가지 여건상 어렵다는 것을 알고 1943년부터 마요르카에서는 순례 지도자 꾸르실료의 일정을 3박 4일로 조정하게 되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의 대장정의 순례 준비를 적극적 으로 도와주었고, 마요르카 젊은이들의 자유와 창조력을 존중해 주었던 후안 에르바스 몬시뇰이 1947년에 마요르카 교구의 부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때부터 순례를 위한 꾸르실료의 준비는 더욱 더 활기를 띠었고 매주 금요일 사제관에서 준비 위원들과 함께 미사와 준비 모임을 가졌다.
1948년의 순례는 성공리에 끝났다. 순례가 끝난 후 에르바스 주교를 중심으로 봉사자들은 이제 껏 실시했던 모든 꾸르실료를 통해 얻은 중요한 요소들을 더욱 훌륭하게 조화시켰다. 그리고 교 회 운동으로 발전시켜 실시하기로 결정하고
그러나 1956년에 마요르카 교구의 교구장이 이동되면서 새로 취임한 교구장은 자신이 선종할 때 까지 약 10년 간 마요르카 교구에서는 꾸르실료를 할 수 없도록 명하였다. 결국 그러한 조치는 꾸르실료 운동이 남미로 더욱 빠르게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세계로 확산되는 동기가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는 교계 제도 내의 성직자 주도의 경향이었던 꾸르실료 운동 을 본래의 모습인 평신도 운동으로 활성케 하는 전환점을 만들었으며, 현재는 평신도 성직자 협 력형 신심 운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시작된 직후인 1963년에 교황 바 오로 6세로부터 교회 내의 신심 운동으로 인정받았으며, 꾸르실료의 주보 성인으로 바오로 성인 을 정해 주셨다.
1966년에 로마에서 개최된 제1차 세계대회에 참석하신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그리스도와 교회 와 교황은 여러분을 믿고 있습니다"라는 말씀을 남겨 주셨다.
제1차 꾸르실료 세계대회에는 세계 20여개국 대표들이 참석했고 세계 울뜨레야도 함께 거행되었 다. 멕시코에서는 제2차 세계대회가 개최(1970년)되었고, 그 후 2년 후에는 스페인 마요르카에 서 제3차 세계대회가 열렸는데, 3차 세계대회까지는 세계 울뜨레야도 함께 열렸다. 1988년에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제4차 세계대회가 열렸고, 한국 서울에서는 1997년에 제5차 세계대회 가 열린 바 있다.
현재 꾸르실료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나라는 세계 60여 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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